에디터의 인턴일지 ep.1

후암동에 위치한 2층짜리 단독주택 리모델링.
첫 인턴을 시작하며 맡은, 첫 프로젝트.

주택은 지내온 세월에 비해 보존이 잘 되어있었다. 어렸을 적 할머니 댁에서 봤을 법한 사각 목재타일이 천장을 덮고 있었고, 벽은 오랜 시간을 머금어 은은한 윤기가 나는 고동색 나무 판자로 둘러져 있었다.
시공비용이 한정적이었기에, 상태가 좋은 목재 천장마감과 벽체 마감 일부를 최대한 살리며 진행하게 되었다.
기존의 목재 마감을 보존하되, 어떤 부분을 보수하여 조화롭게 리모델링하느냐가 관건인 프로젝트.
소장님의 스케치로 리모델링의 청사진이 짜였다.
나에게 주어진 작업은 실측한 도면을 바탕으로 3D 모델링을 올리고, 벽과 천장 마감의 재질을 표현하는 일이었다.

모델링 작업을 하던 어느 날. 새로이 만들어지는 천장의 형태가 직각이 아닌, 곡선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 거실 천장의 정방형 목재타일마감과, 현관 천장에 새로 마감되는 흰 석고 마감의 경계 부분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감아 두 재료의 물성을 자연스레 융화하여 사용자로 하여금 다이나믹한 시퀀스를 선사하여 건축적…어쩌구 저쩌구…
그냥 솔직하게 말하자면, 직감이었다.
곡선이면 이쁠 것 같았다.
일단 느낌이 가는 대로 3D 모델링에 곡선을 과감히 그려보았다.
‘오, 괜찮은데?’
다음날, 소장님과 팀장님의 반응이 생각보다 긍정적이었다.
소장님께선 천장의 곡면 포인트가 귀엽다고 하시면서, 기존 디자인과의 비교를 위해 동일한 뷰의 3D 렌더링 샷을 부탁하셨다.
이후 몇 번의 검토 끝에, 천장은 나의 곡선 디자인이 채택되었다.

철거가 시작되고, 내부설비와 바닥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끝나가기 시작할 즈음. 천장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기존 천장에는 목재 마감이 보강되었고, 현관 부분에는 곡선의 석고마감 틀이 만들어져 있었다.
머지않아 천장에는 현관을 에워싸는, 하얗고 부드러운 곡면이 들어섰다.

내가 디자인한 공간이 1:1 스케일로 만들어져 눈앞에 현실로 보이는 순간.
비록 리모델링의 수많은 요소 중 하나일 뿐이지만, 나의 손길을 스쳐 간 최초의 공간임은 분명했다.
천장을 따라 만들어진 곡면을 보며 소장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이거 네가 디자인한 거잖아, 이쁘네.’
내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ㅎㅎ 뿌듯하네요’

분명, 단순하게 ‘뿌듯하다’ 로 뭉뚱그릴 감정은 아니었다.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실제 스케일의 천장은, <월터의 상상이 현실이 된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답게 눈앞에서 펼쳐졌다.
뿌듯함. 놀라움. 신기함. 다양한 감정들이 순식간에 나의 머릿속을 뒤덮었다.
‘ 아, 상상이 현실이 되는 감각은 짜릿하구나…! ‘

순간, 영화 <인셉션>에서 비슷한 장면이 떠올랐다.
영화 속 주인공 코브의 임무는 타인의 꿈에 들어가 상대방의 생각을 훔치는 것이다.
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꿈속의 공간을 설계하여 구현할 건축가가 필요했고, 그는 건축학과 여학생 애리어든에게 접근한다.

그는 그녀와 함께 꿈속으로 들어가 상상대로 만들어지는 공간을 보여주며 건축학도의 능력이 임무에 꼭 필요하다고 설득하지만, 그녀는 임무의 위험성 때문에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러나 코브는 확신한다.
상상 그대로 만들어지는 순간의 감각을 경험한 이상, 그녀는 분명 돌아올 것이라고.

머지않아 그녀는 코브에게 돌아왔다.
그가 돌아온 이유를 묻자, 그녀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It’s just… pure creation.’
그렇다. 그녀는 코브의 예상처럼, 상상 그대로 만들어지는 순수한 창조의 감각을 잊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다.
나의 상상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지는 경험.
분명 건축을 배우는 학생이라면 뿌리칠 수 없는, 매혹적인 제안이었을 것이다.

‘너 졸업하면 건축 할 거야?’
건축학과 학생이라면 수없이 들어봤을 질문.
그러나, 고된 업무 강도와 잦은 야근, 끊임없는 마감의 압박 등등…
건축이 힘들다는 건, 익히 들어 아는 사실이기에,
확신을 가지고 곧바로 대답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인턴을 하며 짧게나마 느껴본, 나의 설계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순간의 감동이라면.
앞으로도, 상상이 현실에 만들어지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면.
영화 속 그녀와 같이, ‘순수한 창조’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면.
인턴을 마치며, 3년 동안 건축학과를 다니며 수없이 되뇌었던 질문에 대한 소중한 단서를 하나 찾았다.
나의 첫 인턴 생활은, 진심으로 ‘건축을 하고싶다’ 고 다짐한 첫 번째 확신의 순간이었다.
credit
글/편집
skkusoa ‘O’pinon
정호준 Hojun 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