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늦가을 즈음, 집 대청소를 하다가 베란다 창고에 짱박혀있던 필름카메라와 마주쳤다. 20년 전 엄마아빠가 젊었을 때 썼던 카메라를 20살의 내가 쓴다. 제대로 아는 거 하나 없이 오직 호기심에 의존해 막 만지고 막 찍었다. 결과 초점 안 맞는 사진, 흔들린 사진이 태반이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첫 롤을 완성했고 인스타 필름사진 계정 zizifilm을 시작했다. 어느새 내 피드에는 가을과 겨울이 지나 봄이 왔고, 필름카메라는 나의 가장 큰 취미로 자리잡았다. 완성한 필름은 벌써 10롤이 되었고, 세 대의 카메라가 생겼다. 필름사진들과 함께 나의 시간도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도대체 필름갬성이 뭔데?

보정을 거치지 않고도 자연스레 나오는 색감이 좋다. 디지털사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보적 색감이다. 완벽하리만큼 매끄러운, 초고화질의 디지털 사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거친 입자와 의도치 않은 빛 번짐, 잃어버린 초점마저 마음에 든다. 그래서 사진을 올릴 때는 색감을 보정하지 않은 사진 그대로를 올린다. 카메라나 필름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색감도 매력적이다. 어떤 필름은 노란 끼가 강하고, 어떤 필름은 푸른 색이 강조된다든지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아직 초짜라 잘 모르지만, 이런 저런 필름들을 시도해보면서 알아가려고 한다.

20년 묵은 빈티지 필름을 사용한 사진. 보랏빛 색감과 거친 입자감이 독특하다

야 일단 많이 찍어

최고의 사진을 건지기 위해 우리는 열 장이고 스무 장이고 사진을 찍고, 베스트 컷을 고른다. 일단 디지털 사진은 그렇다. 하지만 필름사진의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 방법이다(그만큼의 필름을 살 여력이 된다면 가능한 일이지만). 36장이라는 제한된 컷 수 내에서 가장 예쁘고 소중한 순간을 담으려면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가령 아이가 비눗방울을 터뜨리려는 순간, 인력거가 대나무숲 사이로 지나가는 순간과 같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그러한 찰나를 포착하는 통찰력과, 그 순간을 기다리는 인내심을 길러가는 중이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려?

필름 사진을 찍는 과정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필름을 사서 끼우고, 무엇을 어떻게 찍을지 고민하며 그 순간을 기다린다. 그렇게 한 롤을 채우고, 사진관에 가서 스캔을 맡기고, 또 기다려서 스캔본을 받기까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심지어 필름 사진을 현상해주는 사진관도 흔하지 않다.) 찍고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사진과는 달리 필름사진은 긴 시간을 기다려야 비로소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떻게 나올까 하는 궁금함과 불안감마저 설렘이 된다. 느린 시간 속에서의 기분 좋은 기다림- 이것이 ‘빨리빨리’를 외치는 현대사회에서 아날로그가 다시 주목받고, 사람들이 다시 필름카메라를 찾는 이유가 아닐까.

Who says film is dead?

지지필름에 사진을 올릴 때 짧게나마 코멘트를 쓰려고 노력한다. 사진을 찍는 그 순간에 했던 기억과 생각을 곱씹고 기록하는 과정에 배움이 있고, 내 생각이 성숙해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필카를 드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이 시점에서, ‘필름 감성’ 그 이상을 넘어 이제는 나만의 감성을 찾아가려 한다. Who says film is dead? 첫 사진에 달린 댓글이다. 나는 답한다. Film is not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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