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을 들어가기에 앞서

나는 건축학과에서 현재 3학년 과정까지 마친 학생이다. 이 글은 내가 건축학과에 3년동안 다니면서 느껴왔던 점과 수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공유해보고자 쓰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제일 막막하고 힘들다고 느끼는 3학년 과정 중심으로 써보았다.
(객관적인 사실들을 바탕으로 한 매우 주관적인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3학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설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드는 생각이 있다면, 교육과정 속에서 무언가를 제대로 배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학생이 몇이나 될까 하는 점이다.

*3학년이 되어서 하는 것

3학년이 되어서 하는 것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2학년 때까지는 주택, 유치원처럼 작은 스케일의 건물을 설계하지만, 3학년이 되어서는 갑자기 큰 건물 하나를 한 학기 내에 설계해야 한다.  갑자기 생전 처음보는 법규를 적용시키고, 구조라고는 배울 만한 것이 건축구조의 이해 수업밖에 없었는데 그 수업만을 듣고 한 건물의 구조설계를 해야 한다. 도면도 1:200, 1:300, 1:50, 1:10 다양한 스케일로 칠 줄 알아야 하고, 입면디자인도 처음 해보게 되고, 온도조절, 환기, 차양, mep를 갑자기 다 고려해야한다. 그러면서 설계까지 잘 해내야 한다. 또 여기에는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동원돼야 하는데, 캐드, 라이노, 일러, 포토샵, 레빗, 스케치업 등 모든 건 독학으로 해결해서 도면, 다이어그램, 렌더샷을 구현해야 한다.  2학년때 겨우 높아봤자 3층짜리 건물 도면을 꾸역꾸역 그렸는데, 2차마감까지 전 층 평면을 가져오라고 한다. 실상 다들 해보면 알겠지만 엎지 않는 이상 설계는 그때 끝난다.

이쯤 되면 설계를 잘하는 것이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수업

설계 이외의 것들을 중심으로 가르친다 해서 그게 주된 문제라는 건 아니다.
그것들도 설계의 일부이고 중요한 부분이니까. 내가 진짜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이 많은 걸 한 학기 내에 소화하기엔 너무 무리라는 점이다. 마감만 네 번에다가 패널 요구사항은 늘어만 간다. 이 많은 걸 한 학기 내에 해내야 하는데, 이 모든 걸 제대로 소화해낸 사람이 몇이나 될까. 교수님들은 과연 이에 적절한 수업을 제공하는가. 이건 교수님들 5명마다 다르고 개개인마다 느낀 바가 다르니까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앞서 말한 우리가 요구 받았던 부분 중 교수님에게 도움 받은 부분은 어디인가 생각해봤으면 한다.) 또한 우리는 교육받기보다 평가받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수업은 정말 우리가 잘 구현해낼 수 있도록 도와 주기보다는 매번 이 미친 커리큘럼을 잘 따라가고있는지 체크한다. 수업횟수만 생각해봐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6주니까 32번 수업한다 치면 시험보는 주로 4번,
마감이 네 번인데 패널한번 발표한번 해서 8번,
2학기 기준 추석으로 한번,
실상 마감 전시간은 마감에만 집중돼서 수업이라 하긴 무리다.

이렇게만 봐도 우리는 학기의 반 이상을 평가받는데 소비하지, 교수님과 대화를 통해 우리의 안을 발전시키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평가

그렇다고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는가.
학과에 화가 나는 부분은 너무나도 많지만,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직접 얘기를 들려줬던 부분 중 하나가 교수님들이 크리틱을 하는 태도이다. 우리가 마감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는가를 얘기하자면 너무 입이 아플 거다. 그런 우리의 결과물에 대해 우리가 발표를 했을 때 적지 않게 교수님들이 침묵으로 일관했고, 쉽게 비웃기도 했고, 말은 건네지만 정말 학생의 발전을 위해 건넨 말인지는 모르겠는 말도 많았다.

다른 건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쳐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건 교수로서 명백한 성의부족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것 말고도 시다문제, 금전적 문제, 경쟁유발 등 문제가 많이 남아있다.




*나의 이야기

저마다 과제를 대하는 태도는 다를거라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주어진 것을 정말 잘하고 싶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스스로의 만족감이 중요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여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믿는 건 우리가 한 학기에 정말 적지 않은 학비와 재료비, 우리가 투자한 너무나도 많은 시간, 한 학기에서 건축이 차지하는 비중만을 고려했을 때도 이 과정을 잘 안 해내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을 해내서 너무 놀라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확신하는 건 적어도 안 힘들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란 거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내 건축 3년을 되돌아보면 잘하고 싶은 욕구는 너무 가득했지만, 뭘 향해 달려가는지도 모르는 채 주어진 바를 꾸역꾸역 따라가긴 했다.  3학년이 되었더니 좋은 설계를 하고 싶은 욕구는 버린지 오래고, 주어진 것만 해도 잘 따라가고 싶은데, 그것만 하기에도 너무 무리였다. 요구하는 건 너무 많은 데 그걸 가르쳐 주기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혼자서 제대로 이해해볼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아서 제대로 삼키지도 못한 채 계속 쑤셔 넣다가 결국 체하고 말았다.

나는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 이 생각들을 잊어버리기 보다는 기억해두고 싶다.
내 이야기와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과 아주 다른 이야기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니까. 적어도 내가 보고 들은 바에 의하면. 나는 너무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고, 자책도 많이 했지만 많이 생각해본 결과 스스로의 문제를 빼놓을 수는 없겠지만, 정말 스스로만의 문제도 아니란 걸 모두가 알았으면 한다. 사실 열심히 안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테니까.
그리고 이렇 게나 고생한 시간들을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나도 더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번쯤은 찬찬히 되짚어 보면서 정말 문제가 뭐였는지 생각해보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긴 글을 마치며..

사실 이 글의 시작은 내가 2018년도에 건축학과에서 한 고생이 너무 절대적이어서 정리해보고 싶었고, 그냥 이 과정을 함께했던 3학년 모든 분들 다 너무 대단하고 수고 많았다고 얘기하고 싶어서 였다. 조금의 바램이 있다면 이 글이 감히 3학년을 거쳐간 모든 학생분들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잘 설명한 글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고, 그렇게 우리 학과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됐으면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우리 학과에 대한 문제가 더 이상 덮어두거나 이해해줘야 할 부분이 아니라 표면 위로 올라와서 함께 얘기하고 분노하는 날이 오기를 마음 깊이 바란다.

교수님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서로 침묵하면 어는 누구도 서로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없다. 2학년 친구들이 1:50마감에 대해 목소리를 냈던 것처럼, 우리도 교수님에게 우리의 의견을 꾸준히 전달해야만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디 3학년을 맞이할 친구들이 똑같은 문제와 스트레스를 겪지 않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사진
Guest Editor
김다은 Daeu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