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어, 삼학년 중도휴학”


개강한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어느날 A가 갑작스러운 고백을 했다. A의 말에 삼학년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들이 모였다. 작년에 중도휴학을 했었던 B, 삼학년을 스트레이트로 하는 중인 C, 삼학년을 끝낸 D. 안주는 설탕토마토, 주종은 소주.







C : 갑작스럽다. 대체 왜 중도휴학을 하게 됐냐?

A : 많이 아팠다. 몸도 마음도 어디 하나 건강한 곳이 없었다.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고 있었는데, 몸살에 장염에 코로나 확진까지 되니 휴학하라는 신의 계시인가 싶더라. 지금 쉬지 않으면 내 인생도, 3학년도 죽쑬 것 같아서 휴학했다.
B : 내가 먼저 해봤는데 중도휴학한다고 하늘 안 무너지더라.
D : 원래 3학년 끝나면 허리나 뭐 어디 한 개 쯤은 고장이 나있다고 하지 않냐. 몸 안 좋은 상태로 강행했다가 더 크게 아픈 것보다 낫다. 쉬어야할 때 쉬는 것도 능력이다.




B : 매년 A나 나같은 중도휴학자가 많이 발생한다. 대체 우리의 3학년은 왜 그럴까? 모두 3학년의 어떤 부분이 힘들었나?

C : 나는 2학년과 3학년이 너무 달라서 힘들었다. 커리큘럼도 달라지고, 마감의 페이스도 달라지는데 거기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왔던 변화는 수업의 주안점이었던 것 같다.
D : 수업의 주안점? 수업에서 배우는 게 다르다고 느꼈나?
C : 그렇다. 크리틱 내용을 생각해봐라. 2학년 때는 동선, 공간감 같은 것에 감을 잡게 하기 위해 공간에 대한 크리틱을 많이 해주셨다.
A : 확실히 2학년 때는 설계를 사용자 입장에서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여기로 들어가면 이런 뷰가 보이고, 여길 지날 땐 이런 느낌이 들게 해야지! 이런 것들.
C : 그런데 3학년은 공간에 대한 크리틱보다는 현실적인 것들에 대한 크리틱이 훨씬 많다. 구조, 법규부터 렌더, 다이어그램 같은 것들까지. 3학년 때는 좋은 공간을 그리는 상상보다는 당장 지을 수 있게 하는 현실을 생각하라고 하는 것 같다. 그게 꼭 나쁜 거라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2학년에서 3학년이 될 때 그 변화가 너무 커서 적응하기 힘들었다.

D : C와 비슷한데, 나는 3학년의 평가방식이 힘들었다. 3학년 때, 나는 렌더 말고도 도면, 공간에 대한 스터디를 굉장히 오래했었다. 하지만 결국 보여지는 건 렌더 이미지더라. 3분 발표에서 도면은 5초면 넘어가고, 교수님들도 패널에 있는 도면을 보시지 않는다. 나는 공간을 보여주고 싶은데, 결국 이미지로 평가받지 않나.
C : 하긴, 3분이란 시간 내에 발표를 마치려다 보면 도면은 항상 ‘This is my plan.~’하고 넘어가게 된다.
B : 사실 3학년은 렌더싸움 아닌가. 60명이 3분씩 총 몇 시간을 발표하는데 기억에 남는 건 이미지뿐일 것이다.

D : 마감 일정이 그리 빡빡한데 평가요소가 아닌 것에 시간을 쓰긴 어렵다. 1차마감을 생각해보자, 3주 안에 컨셉, 매스, 심지어는 렌더링까지 뽑아내야하는데 누가 공간에 집중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보니 3학년은 ‘마감을 하는 것’과 ’그럴듯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B : 많은 사람들의 3학년 목표가 ‘좋은 설계를 하기’보다는 ‘3학년 해내기’에 있지 않나. 그것도 비슷한 이유인 것 같다.
D : 그렇다. 어쩌면 우리의 3학년은 아키텍트(architect)를 만들기보단 워커(worker)를 만들어내는 곳 같다.
A : ‘학교는 워커를 만들려고 하는데, 학생들은 아키텍트를 꿈꾼다.’라.. 그 괴리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 같다.

B : 나는 3학년 1학기의 프로젝트가 작은 대지 내에서의 ’오피스’였던 게 힘들었다. 모든 설계가 어느정도 다 비슷하게 나온다. 공간에 대한 생각을 전개하기엔 부적절한 사이트와 프로젝트인 것 같다.
C : 설계가 비슷하니 생각은 뒷전이고 퀄리티가 학점을 좌우하게 됐던 것 같다.
B :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보니 오피스는 ’워커‘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최적의 프로젝트인 것 같다. 마감일정을 맞추는 법, 구조나 법규 같은 현실적인 여건을 반영하는 법 같은 건 오피스를 통해 제대로 배울 수 있다. 그걸 못해내면 3학년을 못 끝내니까 말이다.
D : 학교가 양성하고자 하는 인재의 성격이 우리의 이상과는 다른 것 같다.

C : 그리고 우리의 ’시다‘ 시스템이 이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
A : 원래 시다는 품앗이처럼 서로서로 바쁠 때 도와주기 위함이 아닌가. 나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서 다른 학년의 작업을 많이 배우기도 했고, 도와준 만큼 도움 받으며 마감을 조금 더 쉽게 하기도 했다. 시다의 어떤 게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C : 시다가 원래 의도보다 더 남용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선배의 자료에 매몰되어 자기만의 생각이 적은 설계를 진행하거나, 선배가 평가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이미지를 다 만들어주는 경우도 있지 않나. 그런 경우가 자꾸 생기다보니 다들 시다를 통해 마감 퀄리티를 높이는 데에만 집중하게 된다. 자꾸 그러면 생각은 언제하고 설계는 언제하냐?
B : 학교는 워커를 만들고, 학생은 그에 따라 아키텍트보단 좋은 학점을 받는 워커가 되고자 한다. 건축학과가 이러면 아키텍트를 꿈꾸는 사람은 어디로 가야하나?







A : 현실적으로 학생인 우리가 시스템을 당장 바꿀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내 질문은 이거다. 어떻게 3학년을 통해 워커(worker)가 아닌 아키텍트(architect)로 성장할 수 있을까?

D : 원래 말 꺼낸 사람부터 하는거다. 네 생각부터 들어보자.
A :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모르겠다. 모르겠어서 중도휴학을 선택한 거다. 뭐가 됐든 마이너한 길을 가고자할 때 필요한 건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생각’이 있어야하고, 그 생각을 관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지금의 나는 생각도 없고 능력도 없고 그냥 아무것도 없다. 그런 내가 아키텍트가 되겠다고, 시스템이 이상하다고 말한다면 그건 그냥 떼쓰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휴학하는 동안 건강해지고, 예술을 사랑하면서 생각하는 방법을 더 익히고, 여러가지 능력을 쌓다보면 .. 그렇게 복학하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마음이다.
C : 휴학하면서 생각도 능력도 충분히 성장하길 바란다.
A : 고맙다. C는 어떻게 생각하나?

C : 분명 3학년을 겪으면서 학교나 시스템에 불만이 많아지는 건 팩트다. 하지만 나는 학생들도 이 사태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내가 2,3학년을 거치면서 깨달은 건, 생각보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학에서는 무언가를 직접 가르쳐 주지 않는다. 결국 설계든 건축이든 우리가 직접 고생하면서 지식을 훔쳐 먹어야한다. 우리가 아직 가르침을 떠먹여주는 고등학교 마인드에서 못 벗어난게 아닐까?
A : 맞는 말이다. 설계실에서 맨날 밤을 샌다 하지만 그 많은 시간 중 우리가 프로덕션이 아니라 진짜 생각하고 공부한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의 밤샘이 열심히 하고 있다는 자기위로가 되면 안된다.
C : 동감이다. 결국 3학년을 현명하게 보내는 방법은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대학생의 마인드를 가지는 것이다. 학교가 원하는게 무엇이든, ‘학교가 원하는’ 학생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학생이 되면 되니까. 그 과정이 어떨땐 조금 속상하고 억울할 수도 있지만, 본인만의 유의미한 결과물을 창출해낼 수 있을거라고 본다. 그러면 우리가 원하는 ‘아키텍트’는 사실 우리의 결정에 달려 있을 것이다.

D : 나도 C처럼 3학년 커리큘럼에 대한 불만은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불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3학년을 끝낸 나의 경우,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뭘 하고 싶었는지 잃어버린 채 기계처럼 살았던 때가 있었고 그게 후회로 남아있다. 그러니 다들 같은 ‘워커’라도 나처럼 머리를 비운 채 주어진 걸 하기 보다는 주도적으로 시스템을 이용하는 워커가 되었으면 한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거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생각하고 움직인다면 ‘워커’로서의 경험도 ‘아키텍트’를 위한 양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A : 워커로 일하면서도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것. 중요하지만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처음엔 주도적으로 지식을 얻으려 하다가도 어느새 설계에 지쳐 학교 커리큘럼에 이끌려가게 되지 않는가.
D : 그렇다. 어렵기에 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냥 기계처럼 소모될 뿐이다. 생각하는 워커가 아니라.

B : 모두의 말대로 “생각하는 워커”가 되는 것이 정말 중요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공부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프로덕션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게하는 커리큘럼이라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사막에서도 잘하면 꽃이 피지만, 기왕이면 사막 말고 초원, 이런 데 가면 꽃 피기 얼마나 쉽냐. 환경이 조금만 변하면 건축을 제대로 공부하기 더 좋을 것이다. 학교에서 조금의 여유만 더 준다면,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그 여유를 공부하는데에 쓴다면, 정말 생각하는 워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모두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C : 음, 정말 “우리”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학교만도, 학생만도 아닌 우리 모두가.







사망년.
우리는 3학년을 사망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죽었다 생각하고 해내야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론, ‘한 학기에 450씩 내고 학교 다니는데 왜 배우고 싶은 것도 못 배우고 죽었다고 생각해야하나?’ 하는 불만이 든다. 제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과 사망해야 하는 현실의 괴리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사망년에서 사람으로, 한 명의 미래 아키텍트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skkusoa는 당신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웹사이트 댓글 혹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당신의 의견을 보내주세요.






*모든 대담은 실제 대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A,B,C,D는 실제 인물에 모티브를 뒀을 뿐, 허구의 인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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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편집
skkusoa ‘O’pinion
김수진 Suj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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