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전시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전시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을 이용한 전시 방법 탐구의 과정을 보여준다. 현대 건축에서는 모든 것들이 추상화, 수치화 되었고, 이를 통해 우리는 효율적인 설계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측정 가능한 것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보이는 것만이 존재하는 것이며, 고려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하여 많은 것을 놓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본 전시는 측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배제되고 있는 다른 감각들의 적용을 시도한다. 시각 장애인들의 형태 인지 특성과 공간 인식에 대한 스터디를 통해 얻은 결과물은 이후에도 보이지 않는 건축전을 이어나가며 계속해서 적용되어질 예정이다.


전시 공간은 세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된다.
- 기존의 건축 전시(A 섹션)
- 다양한 감각의 적용(B, C 섹션)
- 시각 장애인을 위한 건축 전시 방법의 탐구(D~G섹션)


벽에 붙은 원들은 점자를 형상화한 것이다. 점자벽의 끝은 영상과 연결되는데, 영상은 지하철을 타고 남산으로 산책을 가는 과정을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표현한 다. 점자벽은 그 과정에서의 소리의 밀도를 나타낸다. 소리는 점점 줄어들어 시각장애인의 지팡이가 부딪히는 소리를 표현한 일렬의 모스부호 영상과 맞닿게 된다. 사실 시각 장애인들은 100퍼센트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보다 흐릿하게, 혹은 얼룩져서 보이는 사람이 더 많다. 그래서 이런 영상작품을 이해하는 데 점자가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은 후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시에서 실제 영상의 내용을 공의 스케일을 줄여 점자로 변형될 예정이다.


< C. 네모들 >은 ‘과연 시각이 인간에게 가장 효율적인 감각인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그 방식으로 후각, 청각적 정보를 이용하여 공간을 인지할 수 있는가를 실험한다. 건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각적 자료인 평면도는 결국 네모 박스들의 연결에 불과하다. 평면도만을 보고 공간을 인지하기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이곳에 설치된 시각적으로 동일한 열다섯개의 하얀 박스들은 결국 평면도의 ‘공간’을 의미한다. 눈으로만 봐서는 박스들을 ‘공간’으로 인지할 수 없으며,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수도 없다. 그러나 박스마다 설치된 향과 소리를 인지하는 순간, 우리는 시각적 일률성을 가진 이곳 안에서 장소를 떠올리고 기호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시각의 효율성과 다른 감각의 비효율성에 대한 인식을 바꾼다.


시각 장애인들이 설계를 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비슷한 듯 보이지만 약간씩 다른 블록들을 상상대로 배치하게 한다면 그게 곧 설계가 아닐까.

매스모델을 순차적으로 변화시켜, 최종모델을 이해하기 용이하게 표현했다. 이는 한번에 최종모델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 E. 촉각 다이어그램 >에서는 피부에 닿는 감각으로 기존 다이어그램 형식의 빈 틈을 채운다. 다이어그램이란 건축물의 복잡한 시스템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화된 시각적 자료를 의미한다. 그러나 다이어그램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무척이나 대략적이며, 복잡한 형태의 건축물에 대해서는 더욱 한정적이다. 설계 과정을 손을 통해 반복적으로 느낌으로써 시각장애인들이 완성된 형태의 모델을 한 번에 경험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 정보 전달하다. 이후 이 다이어그램 모델들은 실로암 복지센터에 기부될 예정이다

시각장애인들에게는 품을 벗어나는 큰 코끼리부터 마천루 빌딩, 풍경과 신 그리고 빛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F. 품 안으로>는 풍경과 건물의 파사드를 전개도를 통해 그들이 쉽게 인지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한다. ‘르 꼬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의 입면으로 현대 공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공간을 손이 닿는 거리에 위치시켜 직접적인 이해를 돕는다. 보통 시각 장애인들은 건축물을 손이 닿는 부분까지만 이해하기 때문에, 입면 전체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 건물을 전개도로 만들어서(접어보며) 외부를 내부로 들여와 방향성까지 이해하기 쉽게 전개도 모델을 만들었다. 또한, 빌라 사보아의 필로티를 느낄 수 있도록 실제로 만질 수 있게 제작했다.

<G. 틈과 침묵> 은 시각의 근원인 빛을 틈이라는 작은 공간을 통해 바라봄으로써 시선을 가둔다. 안을 조명하는 빛과 움직이는 천 안에서 자연 풍경을 여러 감각을 이용해 느낄 수 있다. 모든 천은 눈으로는 다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기 재질이 다르다. 이것으로 촉각의 극대화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어스름한 향과 어깨를 스치는 천, 그리고 바람은 어두운 암실에서 한 줄 빛나는 조명과 같이 조용히 우리에게 다가온다.


cre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