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귀퉁이에서 무심코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사진 책을 두 권 만들었더랬다. 실제로 독립서점에 입고하여 간혹 내가 보낸 책들을 다시 만나곤 하는데, 정작 만들고 판매를 시작하면 실수 했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 밖에 보이지 않아 ‘내가 만들었어요’ 하기 좀 부끄러웠다. 그래도 내 이름이나, 친구와 만든 프로젝트 팀 이름으로 낸 책들이니 정이 들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바로 2018년 2월에 나온 포토진 <COAST STARLIGHT>와 2018년 9월에 나온 <EDGES> by Project Assignment 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독립출판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소소한 감회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프로젝트 어사인먼트 로고

과제처럼 시작한 <Project Assignment>

<EDGES>는 사실 혼자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작자로서의 출발점이 된 이 프로젝트를 꼭 언급하고 싶다. <Project Assignment>는 중학교 동창이었던 동네 친구와 함께 다양한 주제에 대한 각자의 관점을 비교하고 종이에 담아내고자 시작한, 이름 그대로 서로의 과제 같은 프로젝트 팀이다. 종이라고 하면 너무 광범위하지만 우리가 만든 무가지는 매번 새로운 크기와 질감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이 이상의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묘하게 여러 종류의 종이를 수집하길 좋아하던 내가, 어느 날 사진을 찍던 오랜 친구와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탐구한 결과를 담아낸다는 것은, 작지만 생각보다 도전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사진은 다양한 종이 위에 적절히 배치되어, 한 달에 한 번씩 우리의 이름이나 연락처 조차 적지 않은 무가지로 만들어졌다. 몇 군데 독립 서점에 무료 배포하기 시작하여 어느덧 우리는 스무 번 째 무가지를 준비하고 있고, 전시 공간을 갖춘 카페에서 전시와 파티도 열고 북페어에도 몇 차례 참가하게 되었다.

아이다호에서 열린 전시 포스터

경계를 이어 만들어낸 공간 <EDGES>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일년쯤 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아카이브를 일관성 있는 묶을 수 없을까 고민했다. 여느 소개 글에서 자주 하던 말이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Assignment를 자신의 관점에서 각자의 공간에 배치하여 그들의 시간과 공기를 향유하길 바랐다. 그래서 우린 다른 두 공간, 특히 실내와 실외의 경계를 담은 사진을 삼면에 배치하여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저번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들고 나갔던 <EDGES> 이다.

책 <EDGES> 이미지

지난 해 참가했었던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날짜를 맞추다 보니 다소 급하게 만들어서 북서울 미술관으로 가는 길이 그리 마음 편하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우리 부스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다. 규모가 큰 북페어다보니 오히려 관심 있는 책방과 제작자 분들의 부스를 구경하기도 했는데, 반대로 몇몇 책방에서 우리 책에 흥미를 갖고 입고 요청을 주셔서 기뻤다. 사실 독립 출판물이라는 것이 정해진 틀이 없다 보니 제작 과정에서 정말 시행착오가 많아 걱정과 함께 시야를 넓히고자 참가했던 것이라, 한 명의 제작자로 바라봐주시는 분들을 보니 정말 많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햇빛이 그려냈던 여행, 그림자와 시간

아쉬웠던 부분과 새로운 아이디어로 다음 걸음을 준비하고 있는 내게, 사실 팀이 아닌 혼자 만들었던 포토진이 하나 더 있다. 그 책에는 내게 너무나 인상 깊었던 어떤 여행이 그려져 있다.

2017년 여름, 휴학 중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무려 한 달 동안 미 서부 여행을 떠났다. 로스앤젤레스부터 시애틀까지 총 9개의 크고 작은 도시를, 카메라 두 대를 들고 돌아다니게 되었다. 처음 느껴보는 햇빛이 만들어내는 한결 같은 날씨에 감탄하며, 카메라가 버거웠지만 정말 열심히도 걸어 다녔다. 한 달이 누구에겐 짧고, 누구에겐 긴 시간이겠으나, 내겐 여행하는 동안의 한 달이, 시간이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를 이해하는 데에 정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다. 서울과 다른 스케일의 땅을 비롯하여 길 구석 구석과 건물, 자연이 모두 새롭고 황홀했다. 내 앞에 펼쳐진 새로운 모든 장면을 간직하려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나를 둘러싼 모든 새로운 환경들 중 가장 경이롭고 운이 좋다고 느꼈던 몇 장면들 중 하나가 햇빛에 일렁이는 나무 그림자였다. 서울에 비해, 미 서부가 여름 햇볕이 강하고 구름 한 점 없는 날씨가 오래 이어져서 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서울에서도 볼 수 있는 것들을 여행 후 그제서야 보게 되었다는 게 놀라운 일이다. ‘내 모든 변화는 기록할 가치가 있다.’ 라는 말을 소개 글에 많이 쓰곤 했는데, 찍어놓은 사진들을 보니 의식하지 못한 새에 많이 달라진 내 모습과 관점을 느낄 수 있었다.

<Coast Starlight> 과 엽서 이미지

여행의 시작과 끝을 담은 <Coast Starlight>, 리소그라프와 인쇄소.

당시 ‘Cyanotype’ 이라는 고전 인화 방식을 공부한 적이 있다. 앞서 말했듯 종이에도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인쇄 방식에 대한 흥미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여행 동안 찍은 사진을 엮을 때도 내가 찍은 그림자를 어떻게 인쇄해낼지 고민하다가, 그림자라는 게 빛이 어느 장애물을 통과하지 못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미세한 도트로 구성된 리소그라프 방식을 선택했다.

구성과 표지 디자인, 파일 작업까지 어느 정도 마친 상태에서 거의 한달 동안을 종이와 색깔에 대해서만 고민했던 것 같다. 당시 인쇄를 맡겼던 코우너스 라는 곳에서 제공되는 컬러스와치로 프린트된 색감을 계속 비교해보기도 하고, 한 겨울에 난방도 되지 않는 방산시장의 실 창고에서 한 시간 반 동안 벌벌 떨며 색을 고르기도 했다. 처음 해보는 제작이라 얼마가 나올지 전혀 모르던 때였지만 긴 고민 끝에 견적 요청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내 첫 포토 진, ‘Coast Starlight’이 완성되었다.

햇빛과 그림자가 가득한 책에 독특한 제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LA부터 Seattle까지 9개 도시를 여행하며 두 번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동할 때 모두 기차를 탔는데, 그 구간(LA-Seattle)을 달리던 기차 이름이 ‘Coast Starlight’이다.  내가 여행하며 느끼고 본 이미지들과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 제목으로 정하고 나니 역시 괜히 지은 이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책 안에는 직접 쓴 짧은 글도 있다. 글이라기 보단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머리 속에 떠다니는 단어나 문장을 이어보니 글 재주는 없지만 그럼에도 마음에 들어 넣게 되었다. 지금은 잘 펴보지 않는 페이지가 되었지만, 책을 입고한 곳 중 [Printed Matter] 라는 곳에선 고맙게도 책 안에 담긴 사진들과 상통하는 표현주의적인 시라고 언급해주어서 다행스럽고 기뻤다.

또 다른 변화의 앞에서

학기가 시작되고, Project Assignment와 또 새로운 책을 기획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럽고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기록하고픈 변화는 계속 찾아오고 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새로움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 것도 정해진 것 없이 종이 더미 위에서 필름을 감으며 뭘 만들어볼지 고민에 빠진다.

글·사진
Guest Editor
송혜슬 Hyeseul Song
Project Assign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