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베를린 여행 첫번째 이야기
<베를린 화장장>

Editor’s Berlin Trip First Story
<Krematorium Berlin>






휴가를 내고 베를린에 다녀왔다. 6일간 베를린에서 머물면서 들렀던 장소들 중 몇 군데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장례문화 Funeral Culture

여행을 하다 보면 무덤이나 묘지를 지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그럴땐 정말 운이 좋다! 는 생각이 드는데, 피상적으로나마 그 나라에서는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보편적인 장례 문화는 있기 마련이다.

독일의 경우 우리나라와 달리 개인 분묘는 없고 공동묘지와 교회 내지는 성당의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화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가족묘라는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어서 한 가족이 대대로 하나의 묘지를 수십년간 재사용한다는 것이다. 가족묘가 아닌 경우에는 묘지의 임대 기간을 제한하고 있어 전체 묘지 면적이 국토 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0.1%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묘지 면적이 국토 면적의 1%에 이르는 한국과는 대조된다. 독일의 경우 대부분의 공동묘지는 공원화되어 세금으로 유지-관리가 이루어진다. 사회가 부담을 나누는 것이다. 이렇듯 철저하게 합리적인 독일의 장례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장소를 소개한다. 첫번째 장소는 바움슐렌베크 화장장Krematorium Berlin Baumschulenweg이다.



가는길 Way to go

S반

카사캠퍼Casa Camper에 묵고 있을 때라 하케셔막트Hackescher Markt에서 바움슐렌베크Baumschulenweg역까지 S반을 타고 나머지 거리는 걸어갔다.

바움슐렌베크의 거리

역에서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데 이때 마주치는 풍경이 꽤나 흥미롭다. 저층의 공동주택들이 주를 이루는 아주 한적한 모습이다.

귀여운 집들. 발코니만 봐도 취향을 짐작할 수 있다

바움슐렌베크는 전통적으로 농업과 삼림업을 중심으로 하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1894년 독일 농업 여행 전시회 이후 세계 최대의 종묘장 Späth’sche Baumschulen수목원 Späth-Arboretum을 짓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20년 베를린에 편입된 이후, 1938년 베를린 영토개혁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주거단지가 들어섰다. 종묘장은 공공재산으로 지정되고 수목원은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의 특수 식물학 연구소와 자연사 박물관에 배정되어 현재는 여름 기간동안에 일반에 공개된다.

브리츠 운하

마을을 가로지르는 작은 운하를 지나면 넓은 공동묘지가 나온다.

입구.

조금 더 걸어가면 정갈한 정원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가 화장장의 입구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붉은 지붕의 건물 안에서는 비석과 꽃을 판다. 날이 좋아서 그런지 묘지라기 보다는 따뜻하고 조용한 공원 같았다. 여기를 지나가면 화장장이 나온다.

크레마토리움 베를린

건물을 통과하자마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따뜻한 돌과 잔디 바닥은 재를 연상케 하는 흙으로 바뀌었다. 낙엽이 떨어지는 나무들이 정갈하게 심겨있고 가장자리에는 주변의 묘지를 가리는 수풀이 무성하게 있다. 수풀을 등질 수 있는 곳에 벤치와 재떨이가 띄엄띄엄 놓여있다. 애도하는 사람들을 과하지 않게 배려한 것이 세심하다.

입구의 사이니지

바움슐렌베크의 화장장은 베를린에 있는 두 개의 화장장 중 하나다. 프로이센에 화장이 도입되면서 1911년 지금 부지에 신고전주의 양식의 화장터가 세워졌다. 2차 대전을 겪으면서 상당부분 훼손되었으나 베를린 장벽 희생자와 비밀 화장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재건되었다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1992년에 국제 건축 공모전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실제로 보면 엄청난 담쟁이 덩굴을 제외하곤 20년이 넘은 건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정밀하게 잘 지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악셀 슐츠Axel Schultes 샬롯 프랭크Chalotte Frank가 설계했다. 독일 출신의 건축가로 베를린에도 굵직한 건물들을 여럿 설계한 사람들이다.

입구

계단을 올라가면 양쪽에 입구가 있다. 입구가 정말 많은데 모두 위계가 같다. 사실상 정문이 없는 셈인데, 애도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시간을 방해받지 않도록 배려한 것 같다. 건물에서 전체적으로 쓰이는 청록색의 판금은 콘크리트와 썩 잘어울리기도 하지만 너무 밝지 않으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실제로 보면 질감과 색감이 아주 탁월하다. 모든 입구는 자동문이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마주치는 홀. 사진으로 여러번 봤지만 실제로 와닿는 감상은 정말 새로웠다. 처음 느낀 인상은 아주 중립적이라는 것이다. 무겁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따뜻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위로가 되지 않을 정도는 아니다. 세련된 디자인인 것 같으면서도 유난 떨거나 복잡하지 않다. 있는 그대로 슬픔을 받아들이는 공간이다.

기둥 위의 천창에서 떨어지는 빛은 기둥 윗면에 부딪혀 사방으로 퍼지고, 천장에 매립된 조명의 빛은 바닥에 정확하게 떨어진다.

양쪽 벽면엔 모래에 묻힌 영원을 상징하는 13개의 문이 내장되어 있다. 지하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문을 타고 올라간다. 지하에는 628개의 관을 위한 특수 냉장시설과 화장시설이 있다. 관은 전자식 바코드 시스템을 통해 자동으로 보관-화장 처리 된다. 일반 방문객은 지하에 내려갈 수 없다.

거대한 홀의 한 가운데에 놓인 작은 수공간 위에는 하얀색 대리석 돌이 떠있다. 물은 천창의 빛과 애도실을 비춘다. 홀은 2개의 작은 애도실과 1개의 큰 애도실에 면하고 있고 양쪽 벽면 뒤에 작은 애도실들이 위치하고 있다. 애도실은 우리나라로 치면 일종의 장례식을 치르는 공간인데 한국의 장례식장 풍경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우리나라에선 장례도 사업이다.

가장 큰 애도실. 창 밖으로 숲이 보인다. 유리면 안팎으로 이중 수평 루버가 설치되어 있는데 루버의 각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추모가 시작되면 애도실의 좌석에 앉은 사람은 숲과 하늘을 볼 수 있지만 바깥에 있는 사람은 애도실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다.

애도실의 의자와 조명도 청록색 판금으로 되어 있다. 맑은 날 베를린의 하늘 색깔과 비슷하다.

가구와 조명의 디테일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방석도 의자에 맞춰 모두 이형으로 제작했다.

큰 애도실의 양쪽 벽 안쪽으로 올라가면 정말 멋진 공간이 숨어 있는 2층이 있다. 여기에 대한 감상은 훗날 직접 가볼 사람들을 위해 남겨 놓겠다.

큰 애도실을 등지고 나와서 보이는 것은 수공간에 비친 하늘과 화장장으로 들어오는 길이다. 북받치는 감정들로 머리속을 채우고 걸어 온 길을 그대로 마주하게 된다. 쏟아지는 빛을 향해 다시 걸어 나간다니. 불규칙해 보였던 기둥들이 이제서야 가야할 길을 가리킨다. 엄청난 경험이다.

홀린 듯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제서야 이 장소가 어렴풋이 이해가 됐다. 슐츠와 프랭크는 화장장을 설계할 때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

주변을 걸었다. 내부의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머릿속이 비워진 듯 상쾌한 느낌마저 든다.

그러다가 화장실에 들렀다. 밖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아주 일상적인 장소인 화장실을 애도와 추모의 공간과 극적으로 분리한 점이 인상적이다. 설사 가까운 사람의 죽음일지라도 당신의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았으면 하고 말하는 것 같다.

화장실 안쪽에 공중전화가 있는 작은 현관이 있다. 애써 밝은 목소리로 사랑하는 사람과 통화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면서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느꼈을 것이다. 잠깐이나마 목소리를 들으면 조금은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무심하긴 하지만 정말 작은 부분에서도 따뜻한 배려가 있다.



돌아가는 길 Way back to home

화장장을 떠나는 길에 매년 추석때마다 올랐던 성묘길을 떠올렸다. 다같이 제사를 지내고 산 중턱에 있는 무덤에 올라간다. 잡초도 뽑아내고 올라가는 길에 자란 나뭇가지들도 베어낸다. 멧돼지가 파낸 곳은 다시 주변의 흙으로 채운다. 비석에 낀 이끼도 긁어내고 남쪽에서 해를 가리는 큰 나무는 밑둥의 껍질을 따내서 속이 물렁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베어낸다. 이내 절을 올리고 술을 뿌린다. 능선을 따라서 여섯 분의 묘가 있는데 그 중에 생전에 만나본 사람은 할머니 뿐이다.

죽음 이후에 관한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는 가족의 결속을 위한 것이다. 묘지를 돌보는 것 자체가 가족 내지는 후손의 의무로 인식되고, 노동을 통한 스킨십도 이루어진다. 사회가 변하면서 의미는 퇴색되고 간소화되었지만, 여전히 명절은 친척일가가 모여 안부를 묻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라는 공감대가 있다. 반면 독일의 문화는 상대적으로 개인적인 차원인것 같다. 공동묘지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위로받고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다. 떠나보낸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는 공간을 유지하는 것은 사회 공동의 의무로 인식된다.

그러자 모든 경험의 순간들이 또렷해졌다. 평소에 커피를 마시면서 죽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건 어렵지만 묘지나 무덤에 가면 어쩐지 삶과 죽음을 객관화하기 쉬워진다. 어딘가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으스스하지만 공동묘지에 들러보는 것은 어떨지!




글·사진
Cheif Editor
류제헌 Jeheon Rhy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