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베를린 여행 두번째 이야기
<제임스 시몬 갤러리와 베를린 신 박물관>
Editor’s Berlin Trip Second Story
<James Simon Gallery and Berlin Neus Museum>
대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종종 저명한 건축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사무실과 그가 설계한 건물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베를린행 티켓을 끊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그에게 수많은 상을 안겨 줬던 베를린 신 박물관 Berlin Neus Museum의 후속 프로젝트인 제임스 시몬 갤러리 James Simon Gallery가 불과 두어달 전 완공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로써 베를린은 데이비드가 서로 다른 시기에 작업한 두 개의 미술관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성덕의 필수 관문이 된 셈이다!
가는 길 Way to go

하케셔막트에 내려서 서점에 들러 책을 사서 맡겨 놓고 걸어갔다. 신 박물관은 뮤지엄 아일랜드에 위치해 있다. 과거 주거 지역으로 쓰이다가 프로이센 왕가의 소장품들을 보관하기 위해 박물관들이 건설되면서 박물관 섬 Museumsinsel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가장 오래된 베를린 구 박물관 Altes Museum 은 1830년에, 가장 최근에 지어진 페르가몬 박물관 Pergamon Museum 은 1930년에 지어졌다. 왕가의 소장품들은 1918년에 프로이센 문화유산 재단에 위탁되면서 대중에 공개되었다. 박물관 섬의 박물관들은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상당 부분 훼손되었다가 재건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신 박물관 프로젝트다.

하케셔막트에서 슈프레 강을 건너는 다리는 구 박물관의 열주로 이어진다.

열주를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한쪽의 기둥들은 박물관의 벽으로 바뀌고 지붕은 하늘로 열린다. 바닥의 재료는 같은데 조금 더 밝다. 여전히 열주 바깥의 풍경은 드러나지 않는다.

신-구 박물관의 열주와 도시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열주의 입구가 나타난다. 제임스 시몬 갤러리는 슈프레 강과 육중한 기둥들로 둘러 싸여 도시와 분리된 박물관들의 새로운 입구다. 넓어진 기둥의 간격과 얇아진 두께, 밝은 재료, 천장의 높이 모두 기존의 열주에 비해 확연히 가볍고 밝은 공간을 만든다.

사진에서 중정의 오른편에 보이는 석조 건물이 신 박물관, 뒤쪽에 공사중인 건물이 페르가몬 박물관이다. 제임스 시몬 갤러리는 페르가몬 박물관과 신 박물관의 입구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도 독립적인 미술관으로 기능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안내 데스크가 있는 층으로 올라가면 슈프레 강과 박물관 섬의 주변이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와 레스토랑을 품은 열주가 나온다. 종전의 1층 열주와는 다르다. 여지 없는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공간이다. 구 박물관의 열주로 이어지는 열주보다 더 세장하고 과감한 비례. 비를 맞지 않고도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슈프레 강을 따라 걸을 수도 있다.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볼드Bold한 아이디어와 그것을 구현하는 세밀한 디테일의 균형감 때문이다. 나중에 그의 베를린 사무실에 대한 이야기도 쓰겠지만 데이비드의 디테일은 재료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이해에 기인한다. 세계적인 건축가라면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아는 한 그의 감각은 독보적이다.

제임스 시몬 갤러리에는 총 3개의 로비가 있다. 제임스 시몬 갤러리를 비롯해 페르가몬 박물관과 신 박물관에 대한 전반적인 안내와 티켓 판매가 이루어진다. 이만한 규모의 갤러리에 안내 데스크가 3개씩이나 필요할까 싶지만, 다른 박물관의 입구 역할도 겸하고 있기도 하고 실제로 3개의 데스크 모두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안내를 받아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다. 오히려 3개의 로비가 각각 다른 수요를 받아서 분담하도록 계획한 것 같다. 1층의 로비는 지하의 신 박물관으로, 2층의 두 개의 로비는 각각 페르가몬 박물관과 레스토랑으로 연결된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과 바닥의 시각 장애인용 블럭의 디테일이 압권이다.

2층과 1층 사이의 중층에는 뮤지엄 샵과 물품보관소 그리고 화장실이 있다. 창 밖으로 슈프레 강과 강 너머의 거리가 보인다.

지하 1층에선 특별전이 한창이었다. 신 박물관과 보데 박물관에서도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소장품을 다루는 방식이다. 대부분이 전통적인 왕가에 의해 수집된 것들이다 보니 교과서에서나 보던 유물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하는 방식은 현대 미술의 그것과 가깝다. 단순히 보호하고 관리해야할 유물이 아니라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으로서 관람객들에게 보여지는 방식 자체의 즐거움에 대해서도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실제로 이러한 방식이 전시된 사료의 역사적 가치와 유물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 더 효과적이라고 느껴진다. 작품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유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인 것 같다. 제국주의 국가 특유의 뉘앙스가 잘 드러난다.

제임스 시몬 갤러리의 지하 1층을 통해 신 박물관으로 연결된다. 여긴 한국과 달리 경비인력이 전시실 관리도 겸한다. 아무래도 작품 보호와 안전에 더 신경쓰는 모양이다.

신 박물관의 지하 전시실 안쪽은 벽돌로 만든 동굴같다. 천장도 낮고 어둡다.

동굴 같은 전시실을 지나면 일종의 신전과 같은 공간을 만나게 된다. 지하층에는 오랜 기간 땅 속에 묻혀 있던 석관과 그림들이 전시된다. 온도가 높은 조명을 썼다. 지상층에는 더 밝은 자연광이 천창을 통해 벽을 타고 내려온다. 벽의 일부에는 벽화를 복원했다.

신전의 위로 올라갈수록 밝아진다. 신전을 둘러싸고 있는 복도를 통해 다른 전시실로 연결된다.

신 박물관 프로젝트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어디까지가 복원된 부분인지 헷갈린다는 점이다. 신전과 같은 공간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창틀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기존의 구조를 철저하게 따르면서도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낸다.

높게 솟은 신전의 기둥으로 둘러 싸인 투명한 유리 기둥들. 그 안에 또 다른 기둥들이 두상을 받치고 있다. 지하의 석관과 벽화를 거쳐 가장 높은 곳에 사람의 머리 형상이 놓여 있다.

신전을 지나면 시대 순으로 나열된 전시실들이 이어진다. 전시실 마다 다른 시대 혹은 다른 문화권의 유물들을 전시한다. 바닥부터 조각된 기둥과 벽화들 천장의 구조 모두 복원되었거나 과거 모습에 가깝게 재현되었다. 유물 하나하나 뿐만 아니라 당시의 문화를 담았던 공간을 총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전시 공간 자체도 하나의 복원된 작품이 된다.

박물관 안쪽의 수백년 전 사람들의 일상적인 풍경과 창 밖 도시의 일상적인 풍경이 겹쳐 보인다.
돌아가는 길 Way back to home

밖으로 난 두 개의 창문은 뮤지엄 샵과 화장실 앞에 낸 것이다. 볕도 잘 들고 강이 내려다 보이는 자리인데 더 크게, 더 많은 창을 냈을 수도 있지만 사실 더 필요도 없다. 군더더기 없는 그의 작품은 치밀한 고민과 계산 끝에 내린 몇 가지의 단순한 결정들의 집합이다. 대단한 분석이나 감상은 아니지만, 늘 책과 인터넷으로 그의 작품들을 보며 동경해온 한 사람으로서 직접 느껴본 감회는 꽤나 신선한 것이었다. 이로써 아직 공사중인 내셔널 갤러리를 제외한다면, 서울의 아모레 퍼시픽 사옥과 제임스 시몬 갤러리를 순례방문한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성덕이 된 기분이다.
글/사진
류제헌 Jeheon Rhyoo
Chief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