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베를린 여행 세번째 이야기 <카사 캠퍼>
Editor’s Berlin Trip Third Story < Casa Camper Berlin>






호텔과 신발 Hotel and Shoes


마요르카 지방 언어로 ‘농부’라는 뜻의 캠퍼 Camper는 1975년 스페인에서 시작된 신발 브랜드다. 편한 착화감과 독특한 디자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집 앞에 편하게 신고 나갈 수 있는 슬리퍼부터, 근사한 넥타이를 곁들여야 할 것만 같은 가죽제화까지 다루는 제품군도 아주 넓다. 그렇다고 디자인이 밋밋하지 않고 늘 캠퍼스러움이 잘 묻어난다. 특히 빨강 계열의 원색적인 색감이 매력이다. 카사 캠퍼 Casa Camper는 캠퍼가 운영하는 호텔이다. 2004년 바르셀로나를 시작으로 2009년에 베를린에도 문을 열었다.

왜 신발을 파는 기업이 호텔을 만들었을까?

하나의 사업 전략으로 본다면, 결국 고객의 입장에서 브랜드를 더 많이 경험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하루종일 신발을 신는다. 신발을 파는 회사는 신발의 교체 주기를 짧게 만들거나, 한 사람에게 여러개의 신발을 팔거나, 더 많은 사람이 신발을 사게끔 유도하는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할 수 있다. 하지만 캠퍼는 호텔을 선택했다. 호텔은 특별하다. 호텔에서 맞는 아침은 어쩐지 설레고 피곤하지도 않다. 기껏해야 스크램블 에그를 곁들인 소세지와 커피일 뿐인데 괜히 정성스레 음미해야 될 것만 같다. 호텔 객실에 있는 볼펜 마저도 근사해 보인다. 캠퍼는 이런 지점들을 잘 포착했다. 고된 여행의 하루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답답한 운동화를 벗고 캠퍼의 슬리퍼를 신으면 정말이지 너무 편하다. 속으로 ‘갖고 싶은데?’ 라는 생각이 들 즈음 테이블에 놓인 캠퍼 할인권이 눈에 들어온다. 무려 20%다. 캠퍼 매장은 호텔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다.








카사 캠퍼 Casa Camper

로비 Lobby

카사 캠퍼는 하케셔막트역과 로젠탈러 플라츠역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흔히 가로수길에 비유되는 동네인데, 맛있는 식당도 많고 쇼핑하기에도 딱이다. 특히 서점과 빈티지 옷가게들이 알차다. 그 유명한 YUN의 매장도 여기에 있다. 스펙타클한 경관은 없지만 베를리너들의 출근길과 저녁의 일상을 모두 볼 수 있는 지역이다. 1층 로비는 작지만 신경을 많이 썼다. 호텔 리셉션을 안쪽으로 들이고 앞쪽에 현관을 넉넉하게 열었다. 리셉션에서 자전거를 빌려탈 수 있다.

엘리베이터 Elevator
복도 Aisle

로비층을 제외하고 1층부터 6층까지가 객실, 7층이 라운지, 로비 지하에 피트니스와 사우나가 있다. 적당히 흘려쓴 필기체 텍스트와 도식으로 사이니지를 만들었다. 보통 객실 번호는 층수와 같이 표기한다. 반면에 카사 캠퍼는 전체 객실을 차례로 번호를 매기기 때문에 객실 번호만 보고 객실이 몇층에 있는지 짐작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복도에 들어섰을 때 객실을 찾기 편하도록 큼지막한 숫자와 침대 그림이 그려진 간판을 달았다.

침실 Bedroom

객실이야말로 호텔이 추구하는 가치의 핵심이다. 카사 캠퍼는 일반적인 호텔과 다르게 욕실과 침실의 위계를 뒤집었다. 복도에 면한 안쪽에 침실과 거실을, 실외에 면한 바깥쪽에 욕실을 두었다. 침실은 캠퍼 신발에 즐겨 쓰이는 원색의 벽으로 둘러싸여 어둡고 가라앉은 느낌이다. 안쪽 깊이 위치하고 있기도 하고 욕실과 침실 사이에 커튼이 달려 있기 때문에 아침 햇살에 방해받지 않고 늘어지게 잘 수 있다. 머리맡에는 Tolomeo 벽부등을 달아서 각자의 수면에 적절한 조도와 방향으로 조명을 조절할 수 있게 해놨다. 객실에서만큼은 여행지의 풍경보다 휴식과 수면에 집중했다.

욕실 Bathroom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욕실. 침실에서의 완전한 휴식에서 나와 다시 여행을 준비하는 공간이다. 객실은 전부 북향이다. 다시 말해서 객실로 들어오는 햇살보다 객실에서 보이는 건너편 풍경이 받는 햇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아침에 다시 일정을 떠나기 전에 욕실에 들어서면 반짝이는 여행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보통 거울이 있어야 할 자리에 건너편 건물과 가로수의 잎사귀들이 보인다. 거울은 벽에 있다.

샤워부스 Shower Booth

거리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샤워실은 부담스럽긴 하지만 확실히 물기가 금방 말라 쾌적하다.





집 같은 호텔 Hotel like Casa

7층 라운지 7th Floor Lounge





왜 호텔이 아니라 집(Casa)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집에는 늘 끼니를 걱정해주는 가족들이 있다. 이따금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당신은 내가 혹시나 허기질까 하는 마음에 남은 저녁을 거실에 내어놓고 잠에 드신다. 그 와중에 당신이 아끼는 접시에 아주 적당한 양만 담고, 금방 식거나 먼지가 쌓일까 냄비 뚜껑도 덮어 두신다. 그럴땐 감사한 마음보다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카사 캠퍼의 7층에 위치한 라운지는 집의 거실과 같은 공간이다. 호텔을 떠나기 전 이른 아침에도, 호텔로 돌아오는 늦은 밤에도 늘 허기를 달랠 음식들이 가득하다. 과일과 빵들, 쿠키, 샐러드, 요거트, 음료수 모두 아무런 제한 없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라운지의 냉장고 Refrigerator

보고 있으면 늘 마음이 든든한 라운지의 냉장고. 카사 캠퍼에서는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 부담스러운 룸 서비스를 뒤적거릴 필요도, 주변에 24시간 열려 있는 편의점이 있나 찾아볼 필요도 없다. 그저 집에서 어슬렁어슬렁 냉장고를 열어보듯이 캠퍼 슬리퍼를 끌고 라운지에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테이블과 의자 Table and Chair

조식 메뉴는 심플하지만 들어가는 재료부터 달걀의 익힘 정도까지 세분화해서 각자의 기호에 맞게 주문할 수 있다. 스크램블 에그를 곁들인 베이컨을 주문하는데 필요한 체크리스트를 20개 정도 훑어내려가다 보면 정말 독일스러운(prejudice alert)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Weck 용기에 담긴 과일과 샐러드

저녁시간 이후에는 식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들로 채워 놓는다.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양손 가득 들고 방으로 돌아가는 경험은 카사 캠퍼를 더 편하게 느끼게 만드는 요소다.







디테일 Detail

객실과 라운지 뿐만 아니라 사소한 부분에서도 카사 캠퍼의 색깔이 잘 드러난다.



1. 피트니스

피트니스. 무려 테크노짐 케이블 머신을 쓴다

개인적으로 호텔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간 중 하나는 피트니스다. 늘 호텔을 광고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에 비해 피트니스의 구색만 갖춘 호텔도 부지기수다. 카사 캠퍼의 경우 피트니스를 위한 공간 자체는 작지만 여러모로 신경썼다. 사우나와 휴게실도 꽤 근사하다.





2. 조명

로비 조명
복도 조명
객실 조명

복도를 비롯한 카사 캠퍼의 공간들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차분한 분위기다. 그래서인지 유독 조명들이 눈에 띈다. 화려하진 않지만 따뜻하고 독특하다. 취향이 분명한 사람의 집같다.







3. 캠퍼의 제품들

런드리 백
캠퍼 할인권

어메니티와 사이니지 곳곳에 캠퍼 로고가 붙어 있다. 호텔에 있는 내내 끌고 다닌 캠퍼 슬리퍼는 캐리어에 넣어가야 할 것 같이 친숙하다. 체크아웃 할 때 리셉션 직원은 캠퍼 매장에 들러보라고 짐을 맡아준다. 호텔을 나와 코너를 돌면 캠퍼 매장이 있다. 매장에 들어가는 순간 정말이지 캠퍼를 사지 않을 수 없다. 당연하게도 45년 동안 신발을 만들어온 캠퍼의 신발들은 호텔보다 훨씬 멋지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베를린에 매력적인 호텔은 많지 않다. 베를린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카사 캠퍼에 들러보길 추천한다. 캠퍼라는 브랜드를 빼더라도 베를린 어디든지 접근하기 쉬운 위치와 라운지만으로도 충분하다.






글/사진

류제헌 Jeheon Rhyoo
Cheif Editor